미국의 한국학에 대한 잡설 하나
37일전에 투고한 논문이 하나 있다. 지금 어찌되어가는지 확인해보니 아직도 심사자조차 찾지 못한듯 하다.
그런데 별로 놀랍지가 않다. 사실 이 논문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초입부터 시작한지라 약 3년의 시간동안 작성한 건데, 후반부에 들어갈 수록 "과연 영어권에서 심사할 학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기간에는 학회등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미국의 한국학에 대해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최근 몇개의 학회를 다녀오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는 사정상 일년에 한두개의 대면학술회의에 참석한다. 참석 못하는 학술회의도 프로그램은 꼭 다운로드받아 혹시 지인들이 요즘 무슨 공부를 하는지 간접적으로 알아보곤 한다. 가령 다음달에 일본에서 열릴 AAS Conference in Japan (ASCJ)프로그램에서 다수의 지인의 이름을 발견했다. 반가웠다.
https://ascjapan.org/2023-ascj-conference-schedule/
한편으로는 다른발표제목이라도 빨리 훑어보곤 하는데, 요 몇년 미국에서 열린 대형 아시아관련 학회에서 내가 제출한 논문과 비스무리한 발표를 하는 걸 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쓰리쿠션으로 아무개 한국연구자가 사상사나 지성사관련 연구를 한다는 말도 들어본적이 없다. 물론 내가 미주의 커다란 한국연구판을 다 알수도 없을 뿐이지만 적어도 떠오르는 사람 한명이 없다는 것은 문제적이다. 아시아연구에서 사상사/지성사 분과가 전반적으로 쇠퇴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연구분야만 봐도 여전히 적지 않은 "현역" 연구자들이 있다.
이제부터는 뇌피셜/잡설인데, 미주의 한국학이 이런 경향을 보이는 건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생각이다. 2년전부터 몇몇의 역사연구자들과 정기적으로 서로의 글을 같이 읽어주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 한국사 연구자들이 한숨섞인 소리를 몇년간 들었다. 한국역사 분과에서 신규 직장이 거의 전무하다는 말이다. 기실 미국의 각 대학의 한국학 프로그램은 한국연구재단의 돈을 받고 해당 대학에서 1년 몇만불을 얹어서 조교수를 6년간 거의 공짜로 고용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어 강사를 1-2명 채용해서 그 구색을 맞춘다. 여기에 대형 연구중심대학은 물론 여타 분과에서도 한국연구자들을 채용하지만 그정도 여력이 되는 학교는 손에 꼽을 수준이다. 즉, 1명 혹은 2명의 전임연구자와 2명 혹은 그 이상의 언어강사의 구성으로 돌리는 한국연구 프로그램에서 그 1명 혹은 2명의 전임이 어떤 연구를 하기를 선호하는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나 할까.
학교는 한국학 프로그램이 2가지 루트로 선순환하기를 바랄것이다. 첫째, 101 수준의 초급 한국어를 수강한 학생이 흥미를 지속하여 content-based course 그러니까 Introduction to Korean Studies or Intro to Korean Society등의 수업을 수강하기 둘째는 그 반대 경우다. 1학년 수준 한국학 강의를 수강한 학생이 한국어 강의를 수강하는 것. 그럼 그 다음에는? 2학년/3학년 수준의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이 몰리기를 기대하는 한편, 2학년이상 수준의 한국학 수업을 개설해야 하는데, 여기에 어떤 대학이 장준하나 함석헌, 리영희등을 전공하는 연구자를 채용한단 말인가? 설사 기적적으로 사상계나, 박현채의 경제사상을 전공한 연구자가 채용된다 하더라도 그(녀)가 자기연구를 기반으로 학부수업을 개설할 가능성은 대체로 0에 수렴한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학과장이 그런 수업을 하도록 냅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럼 2학년 이상의 한국학 프로그램의 content-based 수업에서 어떤 주제들이 선호되나?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지역연구" 테두리안에서 모든 학문 분과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공부라는 게 어디 있을까? 그러나 미국에서 한국학이라는 지역연구가 구성된 과정을 보면 쓸모있는 것과 별로 그렇지 않은 것의 구별이 점점 더 명확해 진다는 느낌적 느낌이다. 소위 K로 시작하는 조류도 영원치 않을 것인데 그게 끝나면 이 먹물들의 세계는 또 어떤 자본이 침투해서 어떤 연구자들로 채워질지 심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