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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망해가는 역사학전공

by gramsci01 2023. 7. 9.

역사학과 그 주변에서 밥벌이를 하는 선후배동기들과 가진 모임에서 느낀 바는, 양상만 다를 뿐이지 역사학 (혹은 인문학전반)이 서서히 망해가는 건 이미 불가역적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따위의 담론이 나온지는 이미 오래전의 일인지라 이거야 뭐 새롭지 않는데,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 또는 역사학과(부)를 망하게 만드는 노골적인 제도적 폭력의 질이 달라졌다는 것은 반드시 지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십여년전에, 문사철 따위는 필요없으니 굳이 "인문사회"를 유지하려면 죄다 경영학을 하시오라는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Data Science, 의대와 유관학문, AI가 대학은 송두리채 집어삼키게 제도적으로 판을 다시 짜고 인문학이 그 바지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가 최소한의 명줄을 유지하는 기막힌 상황...

 

분명히 말해두는데 이것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의 역사학의 문제이다. 역사학 자체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인간이 시간이라는 개념과 거기서 오는 경험을 포기하지 않는한. 그러니 대학에서 역사로 밥벌이 하는 사람들은 결코 저자거리의 일반인들이 책을 사지 않는다거나 인문학을 개무시한다고 그들에게 화살을 돌릴 이유가 1도 없다. 그렇다. 이건 우리 문제이다. 그런데 안타까운건, 한국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행해지는 이런 폭력에 최소한의 비판조차 거의 들리지 않고, "그렇게 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하는 일종의 운명론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